낙서장 [잡동사니]

나홀로족 - 그들은 왜 혼자이길 원하나

YK Marine Engine 2014. 2. 17. 15:29



모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저녁, 혼자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 남자 혹은 여자를 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물론 그 상황에서 외로움을 생각하는 건 당연할 테지만, '궁상맞다'거나 '외로워 보인다'고만 생각한다면 당신은 지극리 평범하거나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조금 다른 느낌을 갖는 이들도 있다. 그 혼자인 시간을 고스란히 자신을 위해 만끽하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요즘 말하는 이른바 '나홀로족'이 될 자격(?)이 있다. 이 외로움이 무슨 자격씩이나 되냐고? 글쎄, 관계의 피곤에 한번쯤 빠져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혼자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못'한게 아니라 '안'한 것이다.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가 방영됐을 때 사람들은 제목 때문에 내용을 오해했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이라는 표현이 결혼 적령기를 지나 혼자 살아가는 남자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혼자 먹는 저녁에 정성껏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까지 챙겨 먹는 모습은 자신의 외로움을 속이려는 행동처럼 보였고, 고깃집에 혼자 앉아 고기 맛을 음미하며 먹는 모습은 측은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보면 볼수록 이 남자가 차츰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 남자의 생활이 부럽기까지 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혼자'라는 것이 다르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관계의 피곤에서 해방되어 있는 이 남자는 혼자인 대신, 혼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수 많은 군중들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히는 와중에 그는 저 혼자만 아는 뷰 포인트에서 와인이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 오페라 망원경을 손에 들고 그걸 감상한다. 게다가 관계 밖으로 나와 있는 삶은 바로 그것 때문에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그려 낸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는 볼륨을 어느 정도에 맞춰 들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 자신의 즐거움에 충실한 삶. 누가 보면 '까탈스럽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런 참견의 걱정 없이 혼자만의 자족적인 삶. 그러니 이제 알 것이다. 이 결혼 '못'하는 남자는 사실 결론 '안'하는 남자였다는 것을.



집단보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기에 


'나홀로족'은 반드기 결혼을 앞둔 이들만을 대상으로 지칭하는 건 아니다. 따라서 조금은 병리학적인 뉘앙스를 가진 코쿤족(Cocoon, 칩거증후군을 가진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연예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초식남(자신의 관심 분야나 취미활동에는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이나 '건어물녀(일 잘하고 능력 있지만 연애에는 관심이 없는 여성)'과도 다르다. 오히려 '싱글족'에 더 가까운 '나홀로족'이 함의하는 건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깃든 문화다. '나홀로족'은 혼자 영화를 먹는다거나 하는 생활의 측면이 강조되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는 면이 강하자는 얘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이제 좀 더 개인주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나 민족으로 호명되던 과거의 문화 속에서는 집단의 암묵적인 억압이 개인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식의 국가가 개인의 삶에 제시한 표어가 잘 먹히던 시정. 하지만 지금은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집단의 요구보다는 개인의 욕구와 취향이 더 중요해졌다. '나홀로족'들은 이러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각각의 개성이 존중되는 토양에서 자라났다. 여기에 가족의 틀에서 멀어져 독립하는 생활 패턴을 경쟁사회다 만들어 냄으로써 더 많은 젊은이들이 '나홀로족'으로 편입되었다. 취업난은 하나의 관계에서 다른 관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깊은 공백을 만들어 낸다. 지금은, 학교하는 사회에서 직장이라는 사회로 들어가는 과정 사이에는 으레 몇 년간 홀로 준비하는 과정이 필수처럼 느껴지는 사회가 되었다. 



다른 생활 패턴을 즐기는 것뿐


이렇게 보면 마치 '나홀로족'이 본인들은 원치 않지만 사회가 만들어 낸 외계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적인 요인들이 '나홀로족'을 양산하는 이유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이 생활에 불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당당하게 즐기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 패턴이 충분히 하나의 마케팅의 대상이 될만큼 넓어지자 '나홀로족'은 더더욱 우리 생활 가까이로 들어오게 됐다. 이제 혼자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펴들고 일을 한다거나, 혼자 먹을 수 있게 일일이 칸막이가 쳐진 음식점에서 요리를 먹는다거나 하는 '나홀로족'의 생활 패턴은 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상점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이른바 'O O 족' 같은 신조어에는 기본적으로 '우리와는 다르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들을 새로운 종족이라 일컫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 종족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과거에는 부정적인 의미들이 더 많았지만 지금은 우리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쿨한 젊은 세대들에게 "너는 왜 남들처럼 함께 어울리지 않느냐?"고 묻는 건 마치 스스로의 편견을 드러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그렇게 집단을 강조하는 사회에 "왜 늘 함께 해야 하는 건가요?" 하고 묻고 있는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