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는 것의 차이
"이해한다." 를 말해 보자. 입으로 나오는 소리다. 그리고 뇌가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귀가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무엇을 말인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아니면 보고 있지 않은 것까지도?
만화영화를 보면 흔히 동물들이 인간과 같은 말을 하는데, 사실 불가능하다.
현생 인류가 지금과 같이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진화하면서 뇌가 커졌기 때문이다.
뇌가 커짐에 따라 지능도 발달하고, 후두가 내려가는 성도의 진화가 일어났다.
이게 다 직립보행 때문이다.
직립보행이 되면서 두 다리와 척추가 머리를 받쳐줬기에 두뇌의 용량이 커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뭐, 이런 진화론적인 이야기는 다 떠나서 이번에는 뜬구름 같은 걸 얘기해 보자.
우리가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논함에 있어서 홀로 성립될 수 없다.
즉 비교대상이 필요한데, 아주 쉽게 구하자면 서양인과 동양인이 말하는 이해의 차이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일단 '문제를 푼다'는 행위에서 말과의 연관성을 찾아보자.
일반적으로 서양인은 어떠한 문제를 풀 때 말하면서 풀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동양인은 말하면서 문제를 푸는 것보다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집중할 때 문제를 잘 푼다.
문제를 푼다는 것 또한 '이해한다'의 영역에 속하는 만큼,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옛날 옛적에 서양은 아카데미와 같은 학당에서 진리를 탐구할 때 토론을 했고, 동양은 조용한 암자에서 참선을 통해 진리를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문화의 차이일까?
서양인은 언어를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그리고 언어를 통해 사상을 전개한다.
예를 들어 우리들 앞에 자동차 한 대가 놓여 있다고 치자. 서양인들은 머릿속에 '차 = Car'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사물을 인지한다.
동양인은 어떠했을까?
장자는 이리 말했다. "뜻을 얻었으면 언어는 잊으라"
또 공자는 이처럼 말했다. "말로는 뜻을 다 전달할 수 없다"
즉 동양에서 언어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일뿐 목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화는 이것은 '지식' 과 '지혜' 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양문화는 분석과 논리를 중요시하는 지식의 문화였다.
그리고 동양은 종합과 직관을 중시하는 지혜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동양인들이 가끔 뜬구름을 잡는 얘길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말의 교묘함과 정연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꿈꿨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차이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 이해하고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옛 동양에서 안다는 것은 그저 보는게 아닌 '직접 체험을 통해 배우는 앎' 을 뜻했다.
당신은 지금도 보고 있는 것들을 과연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