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나무는 서리나 냉해가 없는 기후에서 자라기 적당하기 때문에 적도를 중심으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의 열대지방에서 주로 재배된다.
이 지역은 지구 가운데 부분을 빙 둘러 마치 띠 모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커피 벨트(Coffee Belt)’ 혹은 ‘커피 존(Coffee Zone)’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지구의 허리띠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커피나무는 기온 15~25도 사이의 배수가 잘 되고 비옥한 약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고, 고랭지 채소와 마찬가지로 고산지대에서 생산된 커피가 단단하고 맛이 풍부하다. 블루 마운틴, 크리스탈 마운틴 등 ‘마운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거나 킬리만자로, 시에라 네바다 등 유명한 산 이름이 붙은 커피가 고급 커피로 분류 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교황에게 세례 받은 커피]
칼디의 발견설에 의하면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커피 음용의 역사가 기록에 나타난 것은 12세기 아라비아의 예멘이다.
따라서 커피 음용 문화는 예멘의 주변인 아라비아 반도로, 터키(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가 예멘을 점령한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이슬람 문명전체로, 나중에는 아시아와 유럽까지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예멘은 에티오피아와 홍해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6세기경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침공해 50여 년간 지배한 사실로 보아 이 시기에 에티오피아의 커피나무가 예멘으로 건너갔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러나 정확한 전파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슬람 문명의 음료로 자리매김을 한 커피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기독교 문명과 접촉하게 된다.
커피가 점차 기독교 문명 내에서 세력권을 넓혀가자 16세기 후반 사제들이 교황 클레멘트 8세에게 커피 음용을 금지시켜 달라고 청하였는데, 커피 맛을 본 교황은 이교도들만 마시기엔 아까운 음료라면서 오히려 커피에 세례를 주었다. 이후커피는 더욱 빠른 속도로 유럽에서 확산되었다.
[모카의 두 가지 의미]
모카는 2가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커피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반해 생산지는 예멘이 유일했으므로, 예멘은 시장을 독점하고 풍요를 구가하는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예멘의 커피가 집결되어 유럽으로 수출되던 항구의 이름이 ‘모카(Mocha)’였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유럽에서는 모카가 커피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그 결과 현재 제과제빵업계에서는 모카=커피로 통한다.
또 하나의 모카의 뜻은 초콜릿이다. 이는 쌉싸래한 카카오 맛을 특징으로 하는 예맨커피를 모방하다가 생겨난 말로, 다른 곳에서 수확된 커피에 초콜릿 맛을 첨가하여 가짜 모카커피(예멘커피)가 유통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와서 커피에 쌉싸래한 초콜릿을 첨가한 메뉴를 ‘카페 모카’로 명명하는 바람에 커피업계에서는 모카=초콜렛으로 통용되었다.
[커피 역사의 산업스파이 - 바바부단]
커피생산을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누리던 예멘에서는 커피묘목이나 종자를 반출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였는데 아무리 막아도 빼내가는 사람은 꼭 있는 법.
1600년경 ‘바바부단’이라는 인도의 이슬람 승려가 성지순례를 왔다 돌아가는길에 몰래 7알의 커피종자를 빼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서 커피를 심었으며 이로 인해 인도 전역과 실론섬에 커피가 퍼지게 되었다.
인도의 문익점이라 할 이 바바부단을 기념해 우리나라 모 커피회사에서는 ‘커피 온 바바’라는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당시 유럽의 강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인도와 실론에서 커피농장을 직접 경영하였으며 1690년경에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커피를 옮겨 심고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조성해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세계의 커피 생산은 예멘 독점 체제에서 모카와 자바 이원체제로 바뀌었고 모카 뿐만 아니라 자바도 커피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후 예맨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어 지금은 세계최빈국 중 하나가 되었으며 모카는 과거의 영광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작고 쓸쓸한 항구도시로 남아 있다.
17세기 초반 커피나무가 예멘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식물원으로 이송되었고, 1714년 암스테르담 시장은 프랑스에 커피나무를 선물한다.
루이 14세는 이 나무를 왕립 식물원에 두고 소중히 돌보았는데 당시 프랑스령이던 마르티니크(Martinique)에서 해군 장교로 재직 중이던 가브리엘 매튜 드 클리외가 1723년 어렵사리 커피나무를 마르티니크 섬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그 한 그루의 나무가 결실을 맺은 것이 중남미 커피 재배의 시작이었다. 드 클리외가 프랑스에서 마르티니크까지의 항해기간 동안 본인이 마실 물을 아껴가며 커피나무를 지켜내었다는 이야기는 커피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커피 벨트의 완성]
또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브라질로 커피가 전파 될 때는 브라질 장교 팔헤타(Palheta)가 총독부인을 유혹하여 커피나무를 빼내왔다는 로맨틱한 뒷이야기도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커피는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로 확산되었고 1893년 브라질에서 아프리카 케냐로 커피가 전해지면서 커피경작은 전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벨트를 형성하게 된다.
커피 벨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와이와 호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진국 내지는 개발도상국들이다.
브라질처럼 저지대에서 커피나무를 대규모로 줄지어 심고 기계로 수확하는 대농장(‘파젠다’라고 부른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소수이다.
대부분의 커피농가들은 소규모 영세농들이고 높은 산에서 커피를 수확해 내려오려면 남미 아저씨들처럼 나귀 등에 싣고 내려오거나 아프리카 아줌마들처럼 머리에 이고 내려오는 수 밖에 없다.
농부들이 이고 지고 고생하며 커피를 수확해도 못 사는 나라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낮고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어 커피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측면이 있다.
커피도 포도처럼 잘 사는 나라에서 자라는 식물이었다면 와인정도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게 죄’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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