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더불어 비만이 질병 유발자의 대열에 들어선 건 이제 상식이 될 만큼 오래전 일이지만, 사회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외모(특히 얼굴의 생김새와 크기) 또한 질병 인준을 받기 위해 대기해있다.
'못생긴 건' 병이다. 그래서 고쳐야 하고,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치병은 아닌거다.
이런 사실을 극단적으로 주지시키는 한 케이블TV의 성형방송(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직역하면 '미인이 되자' 쯤일까)은 시즌3까지 계속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방송은 매회 주인공들이 겪어야 했던 외모에 의한 차별을 극적으로(재현과 주인공의 눈물, 외모 때문에 얻은 잔인한 별명을 수십 번 반복하며)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으로 뽑히기 위해 다른 참가자들과 또 다른 외모경쟁(누가 더 못생겼는지)과 감정경쟁(누가 더 못생겨서 괴로웠는지)을 벌여야 한다.
그 후 주인공이 '미인'의 얼굴을 얻는 험난한 과정을 보여준 후, 짜잔~하고 무대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 모든, 그야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 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의 등장에 박수를 치게 된다.
'정말 잘됐다, 다행이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못난 얼굴로 산다는 것(특히 여성이라면 더욱더!)이 어떤 치욕과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에 대한 공감은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이라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루키즘(Lookism, 외모지상주의·외모차별주의, 2000년 미국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새파이어(William Safire)가 인종·성별·종교·이념 등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차별 요소로 '외모'를 지목하면서 부각되기 시작)'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생소한 것은, 새삼스레 새로운 개념이나 정의를 가져다 쓸 필요조차 없을 만큼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외모는 스펙이고 경쟁력이라는 내 말이, 못생긴 건 병이라는 내 말이,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내 말이. 정말 이상하지 않나?
진짜 병든 건, 작은 키, 못난 얼굴, 뚱뚱한 몸이 아니라, 그것이 질병이라고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이 사회 아닌가?
진짜 치료와 시술이 필요한 건, 낮은 코, 주걱 턱, 작은 눈이 아니라 그것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고, 외적 아름다움이 진정한 미(美)라고 가르치는 정신 나간 세상 아닌가?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죠.' 따위의 말들을 그냥 그러려니 하며 방치해온 지난 몇 해 동안 '외모지상주의'가 곪고 썩어 악취를 풍기기 시작하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 병든 세상을 치료해 정신 차리게 하지 못한다면, 수술대 위에서 흘려야 할 피가, 냉혹한 시선들에 쏟아지는 눈물이, 자괴감에 치를 떨며 버려야할 시간이. 너무 많지 않겠는가?
페미니스트들의 '외모논쟁(혹은 투쟁)'은 실패했다. 현재까지는.
하지만 한번 실패했다고 영원히 끝난 건 아닐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니까. 단지, 더욱 강력하고 공고해진 외모주의에 맞서기 위한 좀 더 치밀한 전략과 용기와 의지가 필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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